빛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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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 류제봉

2025.8.27-9.1

마루아트센터 신관 1층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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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도시의 이미지를 통한 시간의 반추 류제봉은 집을 그린다. 사람의 정서와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인 류제봉의 집들은 우리들의 추억을 소환하거나 동화 속의 한 지점으로 이끌기도 한다. 공간을 엄격히 규정한 기하학적인 구성으로 건물들을 표현한 그의 그림은 매우 이지적으로 보이나 정감 어린 형과 색의 조화로 인하여 오히려 우리의 감성에 호소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의  연작은 작가의 순수한 미적 정서가 도시 이면의 정감 있는 지점을 특유의 시공간적 해석과 회화적 실험으로 추상적 미감을 발현시키는가 하면 이국적 서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회화적 실험과 형상성류제봉의 집과 건물 연작은 표면적으로 대상을 염두에 두고 그린 것이나 여기에는 실제를 초극하는 예술적 향취가 가득하다. 그는 스스로 정한 미적 기준에 따라 대상을 새롭게 해석하여 정제된 프레스코 색채로빛을 흡수하면서 형태가 지닌 순수한 특성을 감각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작가는 아카데믹한 기법이나 고루한 전통을 따르기보다는 현실적대상을 이상화하면서 이를 현실 공간으로 환원시키는 기지를 발휘하고있다. 결코 기교에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화면은 기하학적 추상이지닌 엄격한 화면구조를 유지시키면서 마치 건축가가 건물을 설계하듯이 집을 짓고 색을 칠한다. 언뜻 보면 평면적인 개개의 건물들은 공간을머금으면서 원근과 굴곡을 자연스럽게 노출시키고 중첩된 집들은 작가의 노동의 시간을 환기시키거나 기억을 소환하기도 한다. 고요한 마을의 온화한 생기는 우아한 형태와 깊이 있는 색채의 화면으로 우리의 시선을 끈다. 화면의 전개와 경물의 배치가 고도의 연관성을 띠며 존재하고 부드럽고 시원한 빛에 잠긴 섬세한 구성과 색채의 조화는 평화로운세상을 꿈꾸는 작가의 열망을 반영하는 듯 하다. 때때로 작가는 기억을지우기도 한다. 이 경우 도시 언저리의 집들에서 추상화가 진전된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앵포르멜 추상의 여운이 깊이 노정된 류제봉의 추상은 자연과의 친밀한 교감을 염두에 두고 있음에도 추상적 응축미와절제되면서도 밀도 있는 채색으로 화면의 격조를 상승시키고 있다. 한편 류제봉은 자신의 예술을 회화적 실험의 중심에 위치시키면서 그의 심상에 존재하는 마을의 이미지를 표층에 드러내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기법은 절제된 조형적 질서와 풍부한 이야기 구조, 그리고 윤택한 회화적 풍미를 보이면서 모더니즘 회화와 구별되는 새로운 추상성을 보여 준다. 이국적 도시의 가옥들이 지닌 기하학적 형태미는 어느 순간 순수추상의 형태로 모더니즘 회화가 끊임없이 강조해온절대미의 양상을 보여주는가 하면, 때론 우리를 몽환적인 유토피아의세계로 몰입시키기도 한다.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류제봉은 “작가의 시점으로 집이란... 나를 비롯한 다른 존재들이 나의삶에 들어오도록 허용하는 공간이고 세상과 만나는 통로”라고 언급한바 있다. 집은 전통적으로 건축과 연관되어 논의되어 왔다. 집은 벽과벽의 맺음이고 문은 벽이라는 장막을 넘어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통로이자 경계를 허무는 개방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은 지극히 기술적인 관점, 혹은 기능적인 측면으로 집을 관찰한다. 그런데 작가는 집을 존재와 존재, 관계와 관계를 매개하는 통로로 인지하는 것이다.철학적으로 집은 그것만이 정답이라는 믿음으로 공고해진 경직된 사고의 틀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가는 집을 표현하면서 “그리움을 풀어내고소망을 표현한다.” 사실 집은 외부와의 연결인 동시에 내부로의 단절이다. 문이 있어 열림의 기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벽과 구분되면서도 울타리라는 닫힘의 기능으로만 정체되어 있을 때 실상 소외나 다름없다.집에서의 문과 벽의 관계성은 노쇠한 변증법적 사유를 우리에게 강요하여 존재와 존재 간의 이항대립(二項對立)적 상황에 대하여 사유케 한다. 작가는 이를 극복하는 통로로 집을 상정하고 “덧칠하고 긁고 새기는행위들을 통하여 시간을 각인시키고 되새김질을 한다.”이러한 류제봉의 작업은 시간을 멈춰 세우는 힘이 있다. 실제와 똑같은형상이 필요하다면 사실성을 극대화할 수도 있겠지만, 재현 예술의 가치는 예민한 작업과 수일을 소요하는 ‘시간’에 있다.